[밀레루에] 루에리에게 초콜릿을 먹이고 싶어

마비노기 2차/밀레루에2023. 2. 26. 03:38

 
 
 
 


 

“루에리. 바쁜가?”

목소리를 앞세워 다가온 밀레시안이 그 옆에 털썩 앉았다. 묻는 것은 그저 짧은 예의일 뿐인 모양이었다. 루에리는 손질하던 검을 내려놓고 그를 돌아본다. "왜." 그러자 그 질문 앞에 장작 몇 개가 턱 하니 넘어왔다. "모닥불 좀 피워주라." 그 뻔뻔스러움을 가는 눈으로 보던 루에리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장작을 받아 들었다. 어차피 슬슬 피우려던 참이었으니.

툭툭 떨궈 불을 피워내고, 루에리는 아까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바로 인접한 거리에서 밀레시안이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마 미뤄뒀던 가방 정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가방에 내용물을 넣어놓으면 안에서 뒤섞이는 게 정상이지 않냐는 질문은 이전에 했었고 ‘넌 뭘 모른다’따위의 답이나 돌아왔으니 그걸 다시 묻지는 않았다-묻고싶기는 했다-. 대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밀레시안은 몇 가지를 밖으로 꺼내서 분류하고 담는 것을 반복하고, 몇 가지는 모닥불에 던져서 태우고 있었다. 쓸데없는 것들을 꺼내 던져 넣으며 그가 변명처럼 말했다. 

“요새 여기저기 많이 다녀서 뭔가 많다.”
“그렇게 뒤섞이는 게 싫으면 그렇게 많이 들고다니지 않으면 된다만.”
“……그건 어떻게 하는데?”
“………….”

그의 되물음에 루에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동시에 그 다운 답이라고 생각해서 한숨을 내쉴 뿐, 다른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뭉개고 가는 말들이 쌓여서 산이 되어버리기 전에 불에 태워버려야 할 텐데. 그 마음을 담아 루에리가 모닥불에 장작을 두어 개 던져 넣었고, 쓰레기를 태우느라 일어났던 밀레시안이 그 옆으로 돌아왔다. 몸을 움직이면 닿을 거리. 어느새 가까워진 거리가 새삼 실감되었다. 모닥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어색한 침묵이 진공상태처럼 짓눌려왔던 시간을 생각하면,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아직도 가끔은 그에게 칼을 들이밀고 싶었다. 손을 뻗어 숨을 내쉬는 기관을 틀어막고, 목을 부러뜨리면서 그에게 빼앗긴 인연의 이름을 말하는 상상을 한다. 그 이름도, 자신의 분노도, 슬픔도……. 그러나 동시에 그럴 수 없기도 했다. 가끔 그는 입을 맞춰오곤 했고, 눈을 맞추면 애정이 읽히기도 했고, 닿은 체온은 따듯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것들이 사뭇 익숙해져 있다. 루에리는 아직도 그런 꿈에 시달렸다. 그가 더 이상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는. 

어느 쪽이 자신의 진짜 감정인지 루에리는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확실한 것이 있었다. 그는 더이상 좇고 쫓기는 먼 거리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추상적인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도, 자신도 사람이었고 사람 사이에 있을법한 감정들 중 몇 가지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두려울 뿐이다. 그래, 그저 그런 것뿐이니 자신이 혼란스러운 건 이상한 점은 아니라고. 또다시 생각을 뭉갠다. 이 모든 것이 쌓이지 않고 소멸되기를 바란다. 

“루에리.”

생각의 끝자락에 들리는 목소리에 루에리가 고개를 들자, 자신을 보고 있는 회빛 눈과 마주쳤다. 방금까지 한 상념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것을 평소에 생각하고 있기나 한지 아닌지. 참 태평한 낯짝이다. “이거 봐.” 손 앞에 흔드는 초콜릿 포장 까지도 말이다.

“좋아해?”

옛날에…마리가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초콜릿을 흔들면 쑥 올라오던 작은 손을 기억했다. 손을 뒤로 빼며 놀리던 목소리와, 들려오던 짜증과 옅은 웃음소리를. 루에리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고, 밀레시안이 똑같은 모양새로 초콜릿을 든 손을 뒤로 뺐다. 루에리는 어릴 적 마리처럼 몸이 휘청이지는 않았다. 대신 밀레시안을 바라봤다.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못 먹지는 않아?”
“아마도.”

그런 태평한 것들과 멀리 떨어져 산 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밀레시안은 생각했다. 하긴, 밸런타인이라는 것도 밀레시안들의 축제지, 그와는 관계없는 것일 테다. 밀레시안은 초콜릿의 포장지를 뜯어 초콜릿 하나를 꺼냈고, “음.” 잠시 고민하는 소리를 냈다.

“하나 나눠 먹을래?”
“굳이?”
“굳이. 완전 수작질이거든.”

그리고 밀레시안은 자신의 입에 초콜릭 하나를 물고, 뻔뻔스레 턱을 내밀었다. “싫으면 말고.” 뭉개진 소리. 그럼에도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만히 기다리는 꼴이, 루에리가 휘말려 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루에리가 기가 차다는 듯 초콜릿에 손을 올렸는데, 순간 밀레시안이 그 손을 낚아채고 루에리의 턱을 잡아당겨왔다. 

나눠먹자는 그 말처럼, 밀레시안이 물고 있던 초콜릿을 루에리의 벌린 입 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루에리는 막연하게 반 갈라 먹는 줄 알았던 것이 착각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잡은 턱을 놓지 않은 채 혀에 달라붙은 초콜릿을 문지르고 혀를 빨아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체온에 녹은 초콜릿이 혀 사이로 흘러내리고, 목으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감각에 루에리가 그의 어깨를 꾹 눌러 밀어내려고 했으나, 어쩐지 그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 혀놀림을 따라가기 어려워서인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단맛 때문인지, 손바닥이 간지러워지는 듯한 감각 때문인지. 손에 힘을 쥘 수가 없어서, 그 옷자락을 붙잡고 떨어지길 기다렸다. 초콜릿이 다 녹고, 혀가 맞닿으면 그것이 더 자극적인 것을 잠시 잊고 말이다. 

떨어질 줄 알았던 입맞춤이 이어진다. 아쉽다는 듯, 입안에 숨겨진 단맛을 찾기라도 하려는 듯 안쪽까지 침범하는 혀는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미미한 단향은 아무리 빨아도 사라지지 않았고, 길어지는 입맞춤에 숨이 높아졌다. 둘은 그렇게 잠시 체온과 숨을 나눴다. 키스는 질병에 가장 취약한 행위라고, 입맞춤은 그 최악의 질병까지 나눌만큼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했던가. 루에리는 조금 복잡한 심정이었다. 삶을 다 태워서라도 하는 복수와 다름이 없는 꼴 아닌가. 

밀레시안은 입술을 뗄 때 결국 그 복잡한 얼굴을 마주했다. 그것을 다 읽어낼 수는 없어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숨소리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던 두사람 중 밀레시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른댔나.”
“언제까지고 감정과 생각을 뭉개고 갈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 …그래서 네가 나를 죽인다고 해도. ”

밀레시안이 잠깐 말을 멈췄고, 다시 고개를 낮춰 그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 떨어졌다. 눈이 천천히 감겼다 올라가면 온도가 다른 시선이 정확히 마주했다.

“지금 순간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그리고 루에리는 지금, 이 달달한 향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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