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루에] 죽음에 젖은 목소리

마비노기 2차/밀레루에2023. 3. 2. 03:04

* 죽음, 상해 묘사가 적나라합니다!
 
 
 
 
 
붉게 젖은 시야가 요동쳤다. 사람을 찌를 용도가 아닌 끝이 뭉툭한 검이 복부를 파고들면서 생긴 통증 때문이었다. 으레 관통상은 검을 뽑을 때까지는 출혈이 크지 않다지만, 이것은 상황이 달랐다. 피가 빠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밀레시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울음과 같은, 고통의 신음과 같은.
 
"인사가… 좀 거칠다, 루에리."
 
보고 싶었는데 너무하네. 실없는 소리. 뭐 하나 흔들리지 않는 음절이 없고, 말과 말 사이에 숨소리와 신음이 얽혀 들어간다. 고통을 가늠하듯 떨어진 고개와, 어딘가 고장 난 몸에서 역류해 입가에 흐르는 피. 평범한 인간이라면 출혈만으로도 충분히 죽었을 것이다. 루에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검을 놓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틀지도 않은 채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검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그 힘으로 겨우 버티고 서있을 테지. 그리고 이내 고개를 든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루에리." 죽음에 젖은 목소리….
 
하지만 그는 죽지는 않았다. 루에리는 언제나 그와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았지만, 그는 죽지는 않았다. 아무리 짓밟고 베어도, 찌르고 부숴트려도. 가끔은 숨이 끊어지는 걸 목도하거나 느껴도 늘 그는 다시 목소리를 찾고 일어난다. 그렇다면 그의 의지를 꺾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검에 의지를 잃고 놓는다면, 그것으로 복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가 너를 상냥하게 대할 이유는 없다, 밀레시안."
"하하……."
 
말이 끊어진다. 시선이 잠시 흐려져 떨어졌다가, 천천히 기어올라왔다. "그건 그래." 잠긴 목소리. 저 졸음은 죽음임을 알았다.
 
그런 모습을 너무나도 오래 봐 왔다. 그는 루에리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 수많은 다른 일들에서도 수없이 죽고, 수없이 깨어난다. 그리고 무기를 쥐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은 대부분 옳은 결과를 냈다. 그가 선택한 길은 트리아나를, 리안을 해했을 때와는 다른 것임을 루에리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복수를 멈추지 않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 어쩌면 모든 것이 오해였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진실을.
 
그 진실을 외면하는 동안, 복수의 굴레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피로 얼룩진 승기를 든다. 그럼에도 완성되지 못하는 복수, 쌓이는 모순. 그 모순 속에서 가끔 루에리는 궁금했다. 
 
"밀레시안."
 
왜, 이 모순의 파훼법을 아는 그는 입을 닫고 있는지.
 
"너는,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나?"
 
그러자 숨이 꺼져가는 이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은빛 눈동자는 느리게 초점을 찾는다. 아직 죽어줄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아 보였다. 흐트러지는 숨을 뱉어도 정돈되지 않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밀레시안은, 조금 눈을 깜빡였고……루에리는, 그가 죽는다고 생각했다. 때가 왔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순간, 그 대신 기습적으로 검신을 잡아당기는 힘에 끌려갔다.
 
잡아당겨진 검신이 더 깊게 상처를 후벼 파고, 피가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자기 자신의 배를 가르는 행위였음에, 오히려 루에리의 눈에 당황한 빛이 어렸다. 그러나 그 붉은 시선이 상처부위로 떨어지기 전에, 훅 가까워진 은빛 눈동자가 눈을 응시했다. 붉은색이 비쳐서일까, 피에 젖어서일까. 유독…….
 
"나는 이대로도 좋아."
"……! 밀레시안!"
 
차갑게 식은 손이 대검의 검자루를 잡으면, 그것이 비틀리는 게 느껴졌다. 생살이 찢어지는 생생한 감각이 원치 않게 손에 감긴다. 루에리가 저항해도, 그가 고통의 신음을 흘리면서도, 그 행위는 쉽게 멈출 줄을 몰랐다. 
 
"네가 나를 죽여준다는데."
"… 미쳤군. 놔라."
"끝까지 쫓아와준다는데."
 
못할게 뭐야. 모든 음절에 떨림이 섞인다. 피가 검을 타고 흘러내려 루에리의 손에 닿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떨어지는 피의 온도. 이미 죽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처럼, 그 숨소리는 꼭 죽을 것처럼 멎어 들었다. "루에리." 그의 손이 루에리의 얼굴로 올라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소중한 것을 감싸듯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길. 그리고…
 
"나를 죽여"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의 분노가 모두 사그라들 때까지. 

그 말 끝에 꺼져가는 숨이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루에리는 순간 그가 여태껏 해왔던 것들을 깨닫고 만다. 모든 것을 빼앗고, 자신을 복수의 길로 밀어 넣은 사람. 손끝에 죽음의 감각을 익숙할 정도로 새기는 사람. 그러나 단 한 번도 성공을 제게 쥐어준 적 없는 사람. 

그 모든 것이 그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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