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얀] 베인에게 초콜렛을 먹이고 싶어
마비노기 2차/베인밀레2023. 2. 13. 16:50
영원을 사는 이에게도 시기를 인식하게 되는 날이 일 년에 몇 번쯤은 존재했다. 계절이 바뀔 때, 연도가 바뀔 때, 특별한 날이 되었을 때 같은 날들 말이다. 요즘 같은 시기도 딱 그런 때였다. 인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을 정도로 던바튼 가득 단내가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렌타인. 그 문화의 기원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지만 밀레시안들 사이에는 명절 때보다도 떠들썩한 때였다. 수많은 밀레시안들이 자신의 소중한 누군가 혹은 소중한 지갑을 위해 초콜릿을 만들었고, 형형색색으로 포장한 포장지들이 거리의 가판대에 놓였다. 그러면 밀레시안들은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아마 자신도 만들었을─ 남의 초콜릿을 서슴없이 사서 가방에 밀어 넣었다. 포장지의 색이 중요하다나 뭐라나. 에린의 주민들은 이해 못 하는 얼굴이었지만, 얀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들 사이에 섞여 가판대를 눈으로 훑었다.
분명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어떤 상자를 내려다보고 아르얀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멈춰서고 말았다. 푸른빛과 분홍빛 사이, 은은한 보랏빛을 한 그 익숙한 색은 다름 아닌 자신을 이루는 색과 가장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멈춰서 저도 모르게 손끝에 걸린 포장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전에 챙긴 적이 있던가. 하루하루를 특별하게 챙기지 않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잊은 것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이 손가락에 매달려서 쥔 것을 쉬이 놓지 못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아르얀로드가 생각나게 하는 색의 포장지를 받을 베임네크도. 그것을 내려다보고 따라붙을 이해 못 하는 시선도.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나면, 얀은 기꺼이 값을 치르고 예쁘게 포장한 초콜릿을 넘겨받았다.
뻔히 몰라줄 것을 알면서도, 그 얼굴이 또 좋아서 사고 싶은 것은 무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리고 얀은 예상했던 표정을 마주했다. 차라리 포장지를 보았을 때는 그대가 선물로 고를 법 한 것 같다며 웃었는데. 내용물이 초콜릿인걸 알고서는 조금 의아해했다. 먹지도 않는 자들인 것은 둘째 치고, 가끔 간식을 먹어도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간식을 먹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사람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 이니까."라고 설명을 덧붙여도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뭇 인간들이 챙기는 하루하루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은 한 두 해가 아니기 때문에.
"역시나 의미를 모르겠네만."
그러나 썩 나쁘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얀이 주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좋아라 할 자이기에 그럴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의문을 표현하듯 갸우뚱하는 시선이 포장된 초콜렛에 다시 떨어졌다. 포장지 때문인지, 먹을 생각이 없어서인지 조금 고민하는 것 같은 시선이다.
"그냥 주고싶었어. …이런 거, 해본 적 없으니까."
그러자 그제야 베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포장을 뜯기 고민하는 손을 거쳐, 얀이 포장을 직접 뜯어주었다. 리본을 풀고,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자 바로 달큼한 향이 올라온다. 예쁘게 치장된 초콜릿들 중 하나를 집어 올리자 검은 초콜렛 위에 온갖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얀은 와중에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는 걸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이런 사소하기 짝이 없는 색깔 조합 따위를 좋아하는 것은 고작 밀레시안 정도니까. 그런데도 베인은 그 손에 들린 초콜릿을 보고 조금 소리 내 웃었다. "딱 그대가 고른 모양이군." 포장지 안쪽을 보지 않고 사 왔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만."
"그대가 원한다면 깨끗이 비워줄 수도 있네만"
"그건 좀 후회할 걸."
얀이 웃으면서 초콜릿을 베인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아." 하고. 아이를 어르듯 말하자 소리 내 웃은 베인이 입을 벌려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입술이 손끝을 스치고 가면, 간질거림이 손끝에 남는다.
딱히 베인이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줄 거라고 기대한 적은 없었는데. 우물거리는 표정이 조금 미묘해지는 것이 보였다. 평생 이런 것을 먹은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 텐데, 그 표정이 신기하고 새로워서 얀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사실 이래서 그렇게 고민 끝에 집어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새로운 모습은 아직도 발견할 것이 많았고, 또 그때마다 모든게 사랑스러웠으므로.
"별로야?"
"그대는 즐거워 보이는군?"
"그야, 당신 표정이…"
"우스운가?"
"그건 아니고."
"그럼?"
말꼬리를 붙잡는 말에 단내가 난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게, 초콜릿에 취약한 체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그건 또 그것대로 귀엽지 않은가. 얀은 생각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고작, 이렇게 달달한 초콜렛 하나로. 베인의 불만스러운 표정조차 퍽 마음에 들었다.
"이건… 혼자는 한 개도 다 못 먹겠군."
"이제 됐……"
그러니 나눠먹으면 딱 알맞겠다고. 말을 끊고 닿은 입맞춤이 떨어진 뒤에야 베인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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