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

마비노기 2차/베인밀레2022. 12. 23.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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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아포칼립스 클라이막스(G24) 1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인스트림의 플레이를 마친 후에 일독을 권합니다.

 

반호르에서 마주친 베임네크....답록 아니..아님.. 그냥 제 밀레 반응을 쓰고싶었을 뿐인데요

읽는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 같아서 베인밀레라고 우겨봄(후레라서죄송합니다)

 

2020. 04. 20 최초발행

2020. 05. 24 수정발행

 

 

 

 

 

 

 

 


 

 

밀레시안은 제 뺨을 쓸어내리는 손길과, 그 손길을 따라가는 눈동자를 가만히 보았다. 발로르 베임네크. 수  많은 시간을 갈증 안에서 살았던 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만족감을 얻고 있는지는 그 눈동자를 마주보면 알고도 남았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어떤 형태인지에는 알 수 없다고 표현했지만, 이렇게 선명할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밀레시안이 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원하는 형태와는 너무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러니까,  

 

....안타깝다고 할까.

 

아마 당신은 모를 것이다. 이 지고한 영웅이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큰 사랑을 품어야 했는지를. 시간이 아무리 흐르고, 아무리 소중한 것을 내밀어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잊곤 하는 안타까운 낙원에 갇힌 이들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를. 여러 말로 돌려서 결국 이용하는 사람도, 스스로 나아가지 않고 기대는 사람도, 책임을 넘기고 감사하다는 말로 일갈하는 사람도, 수많은 것을 기대하고, 또 실망하고, 그리고는 두렵다는 말로 밀어내 버리는 사람도,

 

심지어는,

그를 배신하거나 끝없이 증오했던 사람마저, 얼마나 끔찍하게 사랑해 왔는지를. 

 

적이 되어 마주 보는 위치에서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베임네크가 밀레시안에게 들린 책임이 지나치다고 말해왔지만, 그 밀레시안은 본인이 개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자였다. 어떤 사람들은 신과 같다고 말했지만, 그보다 더.. 그래, 굳이 표현하자면 세계와 같다. 누군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어긋나버린 것의… 제자리를 돌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러니, 어쩌면 그 존재가 사랑을 말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당신이 예외가 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그런 꿈결 같은 생각을 품었을 수도 있겠지." 

 

…이렇게 안타까운 자인데. 

 

그렇게 말을 뱉는 그를 보던 밀레시안의 붉은 눈이 더 마주 보지 못하고 떨어졌다. 제 턱에 닿은, 서늘한 손을 끌어올렸다. 그 손등 위에는 미적지근한 온도를 가진 밀레시안의 손이 겹쳐지고, 손바닥에는 기울여 기대오는 뺨의 온도가 닿았다. 한숨 쉬는 작은 숨결도, 기울어지는 검은 머리카락도. 베임네크는 밀레시안을 응시했다. 꼭 손에 쥐고있는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까지 아득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그랬으면 좋았겠어요. 이 엉망인 세계에서 내가 구하며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동안, 마음을 수천, 수만 조각으로 쪼개는 동안…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안타까운 탄식처럼 느끼는 뱉어낸 밀레시안이 시선을 들어 올리면, 두 눈동자가 마주했다. 

 

밀레시안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떠올리고 만다. 이미 설정된 극단적인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기도, 고통을 덜어주기도 하는 수만의 감정들. 그리고 비극의 끝에 보이는 것은 적막과 어둠뿐인. 우리는 비극의 무대 위에 오른 주인공들이었다. 그 무대 위에서 말하는 희극이라니, 이렇게 의미 없는 것이 또 있을까.

 

밀레시안의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면, 베임네크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미 없는 꿈을 꾸었군, 그대."

"당신도 마찬가지군요."

"그래. 하지만 같은 꿈을 꾸지는 않았겠지." 

"...너무 잘 아네요." 

 

희극의 꿈을 꾼다면, 그래. 곁에 당신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롯이 당신뿐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흥미로운 자가 아니던가, 밀레시안이란.

 

 여태껏 수많은 일을 겪은 영웅은 이 그 적막과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것을 알았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이는 자신이 어떤 끝을 맺을지 알았다. 이미 시작된 연극은 지금의 짧은 인터미션을 지나면 다시는 멈추지 않겠지. 

 

그것을 위해 영웅은 칼을 뽑아야 했다. 

이전의 비극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밀레시안은 제 뺨에 닿아있던 손을 잡아 내렸다. 하지만 손을 놓는 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그가 비극의 주인공이고 싶지 않았다는 것처럼 들리는 말을 떨쳐내기에, 이 지고한 영웅의 마음은 너무 나약했는지.

 

아니면, 그 수만개로 쪼개진 마음 중 하나쯤 그에게로 넘어가 버렸는지.